우울증이란
우리는 누구나 삶 속에서 실패와 상실의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큰 뜻을 품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일들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기도 하고, 애정을 느끼며 종사해 왔던 직장으로부터 실직을 당하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는 사랑을 얻고자 소망했던 사람으로부터 뼈아픈 거절을 당하기도 하고, 의지해 왔던 소중한 사람을 멀리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의 아픔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생의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을 때 흔히 우리에게 찾아드는 것이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빠져들 수 있는 ‘인생의 늪’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심리적 감기’라고 할 만큼 매우 흔한 심리적 문제로, 누구나 인생의 시련기에 경험하게 되는 심리적 좌절 상태이다.
우울증의 주요 증상
우울증은 심리장애로서 여러 가지 증상의 복합체이며,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심리적 영역에서 증상이 나타난다. 우울증의 주요 증상을 정서적, 인지적, 행동적, 신체생리적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정서적 증상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는 상태를 뜻한다.
구체적으로 우울한 기분은 슬픔을 비롯하여 좌절감, 불행감, 죄책감, 공허감, 고독감, 무가치감, 허무감, 절망감 등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정서 상태를 의미한다.
우울한 기분이 극도로 심한 경우에는 무표정하고 무감각한 정서 상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아동이나 청소년의 경우에는 분노 감정이나 불안정하고 과민한 기분 상태가 동반되어 우울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둘째, 인지적 증상
우울증 상태에서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증폭된다. 우선 자신이 무능하고 열등하며 무가치한 존재로 여겨지는 자기 비하적인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또한 타인과 세상은 비정하고 적대적이며 냉혹하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인생에 대해 허무주의적인 생각이 증가되어 죽음과 자살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인지적 기능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평소와 달리 주의집중이 잘 되지 않고 기억력이 저하되고, 판단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어 어떤 일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셋째, 행동적 증상
우울한 사람은 어떤 일을 시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루고 지연시키는 일이 반복된다. 또한 활력과 생기가 저하되어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고 쉽게 지치며 자주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즐거운 활동에도 흥미를 잃고 긍정적 보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 활동을 회피하여 위축된 생활을 하게 된다.
우울한 사람들은 흔히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데, 흔히 불면증이 나타나서 거의 매일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수면 중에 자주 깨어나게 된다. 때로는 반대로 과다 수면증이 나타나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자거나 졸음을 자주 느끼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넷째, 신체 생리적 증상
우울증 상태에서는 여러 가지 신체 생리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우선 식욕과 체중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흔히 식욕이 저하되어 체중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반대로 식욕이 증가하여 갑자기 살이 찌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들은 피곤함을 많이 느끼고 활력이 저하되며, 성적인 욕구나 성에 대한 흥미가 감소한다. 소화불량이나 두통과 같은 신체적 증상을 나타내고 이러한 증상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면역력이 저하되어 감기와 같은 전염성 질환에 약하고, 한번 감기에 걸리면 오래 가는 경향이 있다.
우울증을 촉발하는 생활사건
생활사건(life events)이란 생활 속의 변화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 즉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들을 뜻한다. 이러한 생활사건 중에 특히 상실과 실패를 의미하는 부정적인 생활사건에 의해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생활사건들을 경험한 모든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매우 충격적이고 고통스런 생활사건을 경험하고도 꿋꿋하게 잘 견뎌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소해 보이는 사건에도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울증이 환경적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개인의 심리적 요인이 고려되어야 함을 뜻한다.
첫째, 주요 생활사건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이러한 사건들 중에는 우리에게 커다란 좌절감을 안겨주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있다. 이러한 주요생활사건에는 사랑하는 가족의 사망이나 심각한 질병, 자신의 심각한 질병, 가정불화, 가족관계나 이성관계의 악화, 친구와의 심각한 갈등과 다툼, 실직이나 사업실패, 경제적 파탄과 어려움, 현저한 업무부진이나 학업부진 등의 다양한 사건이 포함된다.
둘째, 미세한 생활사건
우울증은 작은 부정적 사건들이 누적되어 생겨날 수도 있다. 우울해지게 된 분명한 충격적 사건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사소한 생활사건들이 누적되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미세한 생활사건으로는 작은 불쾌감이나 좌절감을 유발하는 매우 다양한 사건들이 포함된다. 예를 들면 친구나 가족과의 사소한 다툼이나 언쟁, 친구가 약속시간에 늦거나 안 나타남,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사소한 비난, 전철에서 낯선 사람으로부터 불쾌한 일을 당함, 판매원의 불친절한 행동 등 다양한 생활사건들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 사회적 지지의 결여
아무런 새로운 일이 없었는데 왠지 기분과 의욕이 침체되며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밀려든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오랜 기간 가족과 떨어져 지냈거나 마음을 나눌 친한 친구 없이 피상적인 대인관계 속에서 생활해 온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개인의 정서적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이다.
사회적 지지는 개인으로 하여금 삶을 지탱하도록 돕는 심리적 또는 물질적 지원을 의미한다. 즉 친밀감, 인정과 애정, 소속감, 돌봄과 보살핌, 정보 제공, 물질적 도움과 지원 등을 통해 개인의 자존감과 안정감을 유지시켜 주는 사회적 지원을 말한다.
이런 사회적 지지의 원천은 배우자, 친한 친구, 가족, 동료, 교사 등이다. 이들로부터 주어지는 사회적 지지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생활사건을 차단시켜 줄뿐만 아니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게 된다.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역기능적 신념 바꾸기
첫째, 우울증의 근원, 역기능적 신념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기대를 품고, ‘나는 ~해야 한다’ 또는 ‘나는 ~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행복과 만족의 조건에 대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이 많고 기대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불행감을 느끼기 쉽다. 왜냐하면 행복의 많은 조건과 높은 기대 수준을 현실 속에서 충족시키는 일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비현실적인 신념을 역기능적 신념(dysfunctional belief)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기능적인 신념과 기대는 흔히 실제 생활 속에서 충족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역기능적 신념 찾아내기
역기능적 신념을 탐색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체험하는 우울한 경험을 단서로 하여 그 바탕이 되는 생각들을 추적해 가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통해서 하향화살표 기법의 적용 방법을 살펴보자.
회식자리에서 대화에 끼지 못하고 위축되어 우울감을 느꼈던 대학생 K군이 지녔던 부정적 생각의 하나는 ‘나는 아는 게 부족해서 동료들과의 대화에 끼어 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부정적 생각을 단서로 하여 ‘그렇다면 그 사실이 왜 나를 괴롭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어떤 생각들이 그 기저에 존재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나는 대화에 끼지 못할 만큼 지식이 부족하다.
이 생각이 사실이라면, 왜 나는 괴로워하는가?
지식이 부족하면 동료들이 나를 무시하고 싫어할 것이다.
이 생각이 사실이라면, 왜 나는 괴로워하는가?
동료들이 싫어하면, 나를 멀리하거나 따돌릴 것이다.
이 생각이 사실이라면, 왜 나는 괴로워하는가?
나를 멀리하면, 나는 고립될 것이다.
고립된 삶은 불행하다. 나는 절대로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이 생각이 사실이라면, 왜 나는 괴로워하는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K군이 내면적으로 지니고 있던 신념 내용들이 드러나게 된다. K군이 회식자리에서 대화에 끼지 못해 우울해진 것은, 지식이 부족하여 친구들로부터 무시당하고 결국에는 고립되어 불행해질 것이라는 연쇄적인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울감을 유발하는 역기능적 신념은 대부분 융통성 없이 당위적이고 절대적인 명제로 우리를 압박한다. 만약 K군이 ‘나도 때로는 고립될 수 있다. 고립된 삶이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다’라는 유연한 생각을 지닐 수 있었다면, 같은 상황에서 그토록 우울해졌을까?
셋째, 역기능적 신념의 주요 내용
역기능적 신념은 크게 두 가지 주제와 관련되어 있다. 하나는 사회적 의존성에 대한 것으로서, 타인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믿음들이다. 즉 자신의 인간적 가치나 행복을 타인의 평가와 애정에 의존하는 신념들이다. 역기능적 신념의 또 다른 주제는 성취와 자율성에 관한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뚜렷한 성취나 업적을 이루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들이다.
타인의 애정과 자신의 성취는 누구나 중요시하는 행복의 조건이다. 그러나 역기능적 신념은 지나치게 이러한 조건에 집착하여 절대적이고 완벽주의적이며 융통성 없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특성을 지닌다.
넷째, 유연하고 합리적인 신념으로 전환하기
역기능적 신념이 포착되면, 그 신념의 정당성을 살펴보고 합리적인 대안적 신념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과연 이러한 신념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 삶의 현실에 비추어 순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인가? 나의 삶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을 진지하게 던짐으로써 역기능적 신념의 정당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합리적인 신념은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다. 역기능적 신념은 ‘항상’ ‘반드시’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절대성을 지닌 경직된 신념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항상’ ‘반드시’ ‘완벽하게’ 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연하고 합리적인 신념을 지닌 사람은 어떠한 부정적 생활사건에 직면하더라도 이를 탄력있게 수용하며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행동변화를 통한 우울증 이겨내기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생활사건 중에는 우리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사건들은 우리의 미숙한 행동에 의해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상생활의 여러 가지 문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울한 사람들이 노력해야 할 행동적 변화는..
첫째, 사회적 기술의 향상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잘 표현하지 않아 오해가 싹트고 그 결과 대인관계가 악화되는 경우, 타인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표현하지 못해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거나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표현하지 못한 채 혼자 괴로워하는 경우, 다른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하여 수락하고 애를 쓰다가 결국은 부탁한 일을 해 주지 못하고 비난을 사게 되는 경우가 많다.
효과적인 사회적 행동의 습득을 통해 대인관계에서 긍정적 강화가 증가되고 부정적 경험이 감소하게 된다. 애정, 승인, 칭찬, 감사, 적절한 사과 등 긍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 적절하게 자신의 불편함이나 분노를 표시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 문제해결 기술의 개선
일상적인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대처할 수 있는 문제해결 기술을 배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문제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 과제나 문제 상황을 우선 순위, 중요도, 난이도 등을 고려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 문제해결의 목표를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설정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 시간제한, 다른 과제와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업을 구체적인 하위과제로 나누어 실현 가능한 것부터 체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진행해 나간다.
과제 수행에 있어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에는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문제해결 기술의 중요한 일부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수행한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긍정적인 강화를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자원 활용하기
우리가 곤경에 빠졌을 때 우리를 도와주고 또 우리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지원 세력을 사회적 자원(social resource)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자원의 도움을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라고 한다.
사회적 지지는 부정적 생활 스트레스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주는 완충장치의 역할을 한다. 사회적 자원이 풍부하면 부정적 생활사건이 덜 위협적인 것으로 느껴질 뿐만 아니라 정서적 지원과 실질적 도움(정보 제공, 금전 제공 등)을 통해 어려운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다.
첫째, 주변 사람들의 도움 받기
우울해지면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생겨난다. 그러나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은 행위는...
- 무거운 마음을 경감시켜 준다. 특히 상대방이 나의 어려움을 잘 이해해줄 때는 이러한 효과가 더욱 커진다. 설혹 문제해결의 실질적 도움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허심탄회한 대화는 커다란 심리적 지지와 위안이 될 수 있다.
- 자신의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미처 자신이 생각하지 못하고 간과했던
점들을 포착할 수 있다.
- 다른 사람으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해결의 실마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할 뿐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구체적인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방과의 인간관계가 더욱 친해지고 깊어질 수 있다. 누군가가 고민을 털어놓고 상의해 온다는 것은 나를 가깝게 여기고
신뢰한다는 표시이다. 따라서 상대방은 귀찮고 부담스럽게 여기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신뢰한다는 점에서 고맙게 여기게 된다.
둘째,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 받기
때로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마땅한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 우울증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보았지만 어려움이 계속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대학생의 경우에는 학생상담소(또는 학생생활연구소)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심리적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 있는 일이다.
권석만 <우울증>에서 발췌